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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우리나라 재계 순위 2위에 자리까지 올라갔던 대우 그룹 김우중 회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가장 큰 대기업이라고 하면 삼성이 바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20여 년 전 삼성보다 재계 순위가 더 높았던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1998년에 대우그룹입니다. 하지만 한국 재계서열 2위의 대기업 대우그룹은 순식간 공중분해 되었습니다. 대우그룹을 세웠던 김우중은 현대그룹의 정주영 삼성그룹의 이병철과 함께 대한민국의 3대 재벌 성공 신화로 불리던 인물입니다.
대우그룹의 태동
대우그룹은 1967년 3월 대우실업이라는 작은 회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김우중은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서 일하던 셀러리맨이었습니다. 김우중은 출장 중 동남아를 방문했는데 면직물 소비보다 공급이 부족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시장을 파고들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동에 옮깁니다. 자본금 500만 원 현재 가치로 1억 원 정도의 돈을 가지고 친분이 있었던 대도섬유의 도재환과 함께 서울 충무로에 대우실업을 창업합니다. 대우라는 이름 또한 대도섬유의 대와 김우중의 우를 따서 만든 것입니다. 초기에는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뒤 해외 회사와 계약이 성사되면 계약금으로 돈을 갚는 과감하고 공격적인 경영을 합니다. 사실 위태위태한 방법으로 자칫 잘못하면 빚더미에 앉게 되는 방법입니다.
대우그룹의 전성기
김우중의 판단은 옳았고 창업 첫해부터 싱가포르의 트리코트 원단을 수출해 58만 달러에 달하는 수 실적을 올리게 됩니다. 창업한 지 3년 만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철탑 훈장을 받고 5년 차에는 100만 달러 수출을 기록하게 됩니다. 자신감이 붙은 김우중은 회사를 공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수출 품목도 원단에서 다양한 품목으로 확대했고 국내 중소기업 수출의 대부분을 대우가 담당할 정도로 큰 종합 무역 회사로 성장하면서 운도 따라왔습니다.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 덕에 민영화되던 국영기업들을 저렴하게 인수받게 됩니다. 설립한 지 불과 10여 년밖에 되지 않은 1981년 매출액 기준으로 현대그룹 현재 lg인 럭키 금성그룹, 삼성그룹의 뒤를 이어 재개 4위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70년대에 발생한 오이 쇼크 때도 매물로 나온 기업들을 헐값에 인수하며 몸집을 더욱 키우죠 이때 대우그룹이 건설, 기계, 전자, 자동차 같은 분야로 발을 넓히게 됩니다. 김우중은 확실히 대담한 실행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일화가 아프리카 시장입니다. 리비아의 무하마르 카다피를 만나 사막 복판에다가 공항을 건설하는 사업을 수주받았는데 이탈리아와 같은 선진국 건설업체도 불가능하다며 포기했던 사업입니다. 대우그룹의 이사진들도 무모한 공사라면서 반대한 사업이었지만 김우중 회장은 불가능은 없다며 밀어붙여 결국 약속한 시일까지 성공적으로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중동시장의 대우라는 브랜드를 각인시켰고 1983년에는 기업인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국제 기업인상을 아시아 기업인 최초로 받게 됩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출판해 6개월 만에 100만 부를 판매하고 6개월 만에 100만 부는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네스 기록했습니다.
80년대 후반에는 동유럽의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몰락하게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또 하나의 기회로 다가와 대우는 가장 적극적으로 동유럽 국가들에 진출했습니다.
김우중은 교육 사업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53억 원이라는 거금을 투입해 대학을 인수하여 아주대학교를 수도권의 주요 대학으로 성장시키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90년대에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파산 위기를 겪던 트럼프에게 대우그룹이 대부분의 자금을 지원해 뉴욕 트럼프 월드를 성공시킨 일도 있었습니다. 트럼프도 대우그룹에 감사함을 표하며 한국을 방문해 김우중 회장과 골프도 함께 치고 여의도 대우 트럼프 분양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도 서울, 부산, 대구에 남아 있는 트럼프 월드가 합작의 흔적입니다.
대우그룹 파산 원인과 해체 이유
김우중 회장이 성장했던 것은 공격적인 경영 덕분이었지만 김우중 회장의 실패도 공격 적인 경영이 원인이었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일단 만들면 팔릴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유효한 경영 방식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고도 성장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에 불어닥친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제가 얼어붙게 되자 물건은 팔리지 않았고 모두 부채로 돌아왔습니다. 기술은 사 오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기술 개발에 소홀했던 것도 하나의 큰 파산 원인과 해체 이유였습니다. 대우 자동차나 대우전자의 제품은 필수 기능만 갖춘 대신에 튼튼하고 고장이 잘 나지 않는 것으로 승부를 보았습니다. 반면 삼성이나 LG는 앞다투어서 첨단 기술을 자랑하던 중이었습니다.
결국 대우는 90년대부터는 개발의 중요성을 깨닫고 첨단 기술이 제품이 최고의 가치가 있는 제품이라는 인식으로 뒤늦게 기술 개발에 노력했지만 이미 다른 회사들과 벌어진 기술 격차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대출과 어음을 통한 무분별한 차익 경영이었습니다. 물론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대기업들의 차익 경영은 당연하게 여겨졌죠.
1997년 30대 그룹 계열사의 부채 총합은 350조에 달했고 평균 부채 비율이 518%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 대우그룹의 부채 총합은 89조 원에 달했습니다. 참고로 대한민국 정부 예산이 84조 원이었습니다.
게다가 회계 조작을 통해 부채를 숨기고 은행을 속여 대출을 받았으나 이 상황에서 1997년 한보그룹의 부도를 시작으로 IMF가 한국을 덮칩니다. 하지만 김우중 회장은 대출을 더 받으면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오일쇼크 당시 때 헐값에 기업들이 사들인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대출을 받아 쌍용 자동차를 과감하게 인수하고 쌍용자동차의 자산을 담보 삼아 추가 대출도 받으려고 했습니다. 부채율 감소와 구조조정에 힘을 기울이던 삼성이나 현대 엘지와 다른 모습이었죠.
쌍용자동차의 인수로 현대자동차를 제치고 국내 자동차 1위를 찍습니다. 재계 순위도 삼성을 제치고 2위에 올라가게 됩니다. 얼핏 보기엔 김우중 회장의 전략은 성공적인 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대우 그룹의 부실함은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일본의 금융계가 대우그룹의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내용으로 보고서를 발행하면서 본격적인 위기가 시작됩니다.
1998년 말 대우그룹은 41개의 계열사를 10개로 줄이는 조정안을 발표하고 1999년 4월 대우자동차를 제외한 그룹 내 모든 계열사를 모두 매각하고자 했으나 부채 덩어리인 대우그룹 계열사를 살 기업이나 투자자는 없었습니다. 결국 대우의 12개 계열사가 어음을 결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워크아웃에 하게 됩니다. 김우중 회장은 중국으로 도피하였고 12월 그룹 임원단 전체 사퇴로 그룹 전체가 해체됩니다.
대우그룹의 몰락은 대한민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으며 정부에서도 공적 자금 180조 원 중에 6분의 1인 9조 원가량에 달하는 돈을 대우 계열사에 투입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계열사는 투입된 공적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여러 회사로 분리되어 매각되었습니다.
대우자동차의 경우에는 승용차 부문은 미국의 GM으로 트럭 부문은 인도의 타타 그룹 영암 모자가 인수했으며 인수했던 쌍용자동차는 중국 기업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룹의 해체 이후 정부와 금융당국의 조사로 김우중 회장이 엄청난 분식 회계가 드러나게 되었고 김우중 회장은 인터폴에 수배됩니다. 5년 8개월 동안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하다 2005년 6월 귀국해서 검찰의 조사를 받고 2006년 재판에서 징역 8년 6개월 벌금 1천만 원, 추징금 7조 9253억 원을 선고받지만 2007년 특별사면으로 감옥에서 풀려납니다. 다만 추징금은 감면받지 못했습니다. 전체 추징금의 0.5%인 887억 원을 납부했지만 7조 8천억 원에 달하는 추징금은 납부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에는 강제로라도 추징금을 받아내야 한다는 김우중 추징법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결국 2019년 12월 김우중은 83세의 생일을 10일 앞두고 사망합니다. 불꽃 남자 김우중에게서 배울 점도 있지만 경각심도 일깨워주는 인생사 샐러리맨의 신화였지만 비참하게 끝난 대우 그룹과 김우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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